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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through/Archives

[너에게 썼던 편지] 사랑한다는 건

by Gwen_서진 2023. 2. 28.

 

사랑하기.

 

사랑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조건들이 필요한 걸까?

 

숱한 연애를 해 왔지만 나는 아직 사랑이 뭔지, 사랑한다는 상태가 뭔지 잘 모르겠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책이나 잡지의 칼럼, 강연과 대중 매체들을 통해서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설명해주는데도 도무지 와닿지가 않아. 어떤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에로스적 사랑이 30만큼, 동반자적 사랑이 50만큼,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사랑이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는건지 의문이야. 영화 클로저에서 앨리스, 그러니까 제인이 댄에게 외쳤듯이 말이야.

 

"Show me! Where is this love? I can't see it, I can't touch it, I can't feel it, I can't hear it. I can hear some words but I can't do anything with your easy words."


사랑이라는 거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지난 연애들에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사랑과는 뭔가 다른 거라는 걸 뒤늦게 깨달으면서도, 나는 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리는 사랑일까,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런 게 가능할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를 사귄다고 하면 다들 어디가 좋냐고 물어보지. 옛날에 나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어서 좋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알고보니까, 그 사람이어서 좋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그 사람을 이루는 조건들이 좋다는 뜻이더라. 그 사람을 이루는 것들 중에서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은 조건들이 우선이었으니까. 시간이 갈수록 느껴지는 다른 조각들이 날 아프게 했었어. 그래서 이제는 어떤 관계들 속에 있는 너를 좋아하려고 해. 나는 아직 미숙한 사람이라 너의 관계들을 보는 게 쉽지 않지만 옛날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본질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너를 좋아하는 아주 큰 이유 하나는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거야. 나를 좋아하는 사람 모두를 내가 좋아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네게 있어서는, 나를 향한 네 애정이 내 애정에 밑거름이 되어줬어. 이제는 싹튼 내 애정이 스스로 자랄 수 있는 시기에 이르렀지만, 처음에는 그랬어. 그 땐 순수하게 애정을 믿고 받아들였었어. 지금은 그게 조금 어려워.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서 끊임없이 너의 애정을 의심하고 혼자 괴로워하지.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누가 좋아해줄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 누가 나를 좋아해주는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렇다고 답하는 내가 다시 스스로 질문을 하지. 왜? 내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대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사람은 아주 완벽한 사람이면 좋겠어.

 

그래, 나는 사실 아직 사춘기 청소년의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의 유치한, 하지만 원초적인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거야.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세간에 널리 알려져있어. 심지어 딱히 계몽적인 가사는 아닐지라도 유명한 노래 제목도 있지. Love yourself.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왜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이유로 고민을 하겠어.

 

그런데 너는 어떨까? 나는 항상 궁금해. 애태우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너는 무슨 생각을 할까, 너도 불안할 때가 있을까, 너는 나의 좋아하는 감정을 신뢰하고 있을까, 뭘 믿고 그럴까? 항상 차분한 네 모습을 보면서 가끔은 나 혼자 바보가 된 기분이 들어. 왜 내가 먼저 우리의 관계의 앞날을 그리는 사람이 되는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멈출 수가 없어. 나는 여전히 사랑을 믿는 사람이니까. 언젠가는 너를 사랑할 거라고 믿으니까.

 

너를 사랑한다는 건 나에게 있어서 나를 사랑하는 일이기도 해. 사랑하고 싶어. 네가 나와 함께 사랑했으면 좋겠어.

 

Closer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