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올드한 팝송 중 들을 때마다 나를 부드럽게 감싸안아주는 곡이 있다. “어 하우스 이즈 낫 어 홈” 이라는 제목으로, 건축물, 구조물로써의 집(하우스)과 그곳에 사는 구성원이 있어야만 완성되는 우리집(홈)은 동치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클라이막스에서 가사는, 그냥 집은 우리 집이 아니야, 이 공간이 우리집이 되도록 만들어줘, 하며 애타게 누군가를 부른다. 따뜻한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우리집’은 나에게 소중한 존재 또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존재를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다.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지만,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꾹꾹 눌러담겨있다가 터져나오는 듯한 그리움과 애수가 마음 속까지 그 울림을 전하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오래 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작년 이맘때 쯤 내가 홀로 지낼 공간을 마련하고나서부터였다. 부모님과 살면서 그리고 룸메이트나 하우스메이트와 지내면서는 내 침대, 내 방 정도에 국한되어있던 “내 공간에 대한 애정”이 서서히 집 전체로 스며들어 내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 끈덕진 애정은 집과 나를 찰싹 달라붙게 만드는 듯이 느껴졌다. 일과를 마친 후 바싹 마른 잎사귀의 행색을 하고 현관으로 들어와 신발을 벗는다. 온갖 잡동사니가 들어 묵직한 가방을 마룻바닥에 내려놓으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혹은 내일이 어떻게 들이닥칠지에 대한 고민도 잠시나마 같이 내려놓아지는 것 같다. 가만히 음악을 틀고 소파위에 몸을 뉘이듯이 기대어 노랫소리를 들으면 물을 먹은 꽃잎과 줄기가 통통하게 생기가 돌듯이 낮동안 빠져나간 내 안의 무언가가 다시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약간 노란 빛이 감도는 조명을 켜 보아도, 벽에 좋아하는 그림이며 엽서며 포스터를 붙여보아도 도무지 이 공간이 아늑하게 느껴지지 않는 날들도 산재한다. 빨래통에 쌓여있는 구겨진 옷 더미와 거울 표면에 오래된 필름사진 느낌의 필터처럼 뽀얗게 쌓인 먼지가 새로운 업무로 다가와 몸을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지친 순간에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받쳐주는 것들이 우리의 삶에서는 꼭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시작할 때부터 마무리할 때 까지 곁을 지켜주는 반려동물의 따스한 온기가 그런 존재일 것이다. 나에게는 거실 한 켠 소파 위에 열을 지어 자리잡은 인형들이 바로 그것이다. 알록달록한 원색부터 부드러운 파스텔톤까지 무지개보다 더 다양한 색 조합을 뽐내고 있는 인형들. 포근하고 부드러운 결을 가진 토끼부터 푹신하고 안기 좋은 커다란 위니 더 푸우까지, 각양각색의 동물 인형들이 내 곁을 지킨다.
누군가는 표정을 지을 수도 없고 재롱을 부리지도 못하는 인형들이 어떻게 한 사람의 마음과 공간을 채워줄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인형을 청소하는 것은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라서 애정을 담아 관리해줘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애정을 되돌려 받는다. 청실홍실 이야기를 떠오르게 하는 빨간색 파란색의 메릴랜드의 명물 블루크랩 커플은 인생의 반 이상을 친구로 지낸 H가 병문안 선물로 들고왔던 인형들이다. 우리는 납작한 게 인형을 서로의 머리에 올려놓고 누가 더 오래 균형을 잡나 쓸데없는 내기를 하며 웃어댔었다. 모노톤의 병동, 무료한 병실 안에서 그 선명한 색은 위안이 되고 나를 감싸안아주었다. 별다를 것 없는 환자용 침대 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듯 반짝이는 플라스틱 눈으로 그 존재감을 과시하며 딱딱하고 얇은 침대를 가만히 누워서 잠겨들 수 있는 홈으로 만들어 주었다.
모든 인형들이 그렇게 사연을 가지고 있다. 친구로부터, 연인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하나씩 받아 차곡차곡 모여있는 애정의 증거.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서 가사는 말한다. 계속 사랑할 거라고 말해줘. 열쇠를 돌려 문을 열 때 거기에 있어달라고, 이곳을 우리 집으로 만들어 달라고 외친다. 사랑이 있는 한 나의 하우스는 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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