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5

겨울이 온다 겨울이 온다. 두터워지는 옷깃에서, 차가워진 하늘에서 뿐만 아니라, 그냥 지나칠 뻔 했던 내 발길을 잡아 세운 광고판에서도 겨울은 온다. 다이어리. 나의 하루. 나의 일년. 나의 기록. 감각적이고자 노력한 광고 문구는, 세련된 컬러블록을 배경으로 감상적인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12월에 접어들었지만 그다지 춥지 않은 날씨 덕분에 시나브로 변하고 있는 계절을 두고 한 해가 끝나가고, 또 시작될 거라고, 그러니 지금은 겨울이라고 못박는 듯한 단어들이었다. 바람이 코트 사이로 훅 들어와 어깨가 파르르 떨린다. 목요일의 퇴근길은 이상하게 썰렁한 느낌이 든다. 해질녘의 하늘은 그다지 붉은 빛을 띄지 않았다. 다 같은 사각형이지만 온갖 높이를 하고 있는 건물들의 실루엣이 저녁 하늘을 갈라내어 밤이 오고 있음을 알린.. 2023. 3. 7.
애플워치와 습관의 과학 애플워치를 샀다. 교통사고 피해 합의금으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매할 여건이 되는 바람에 1년 가까이 걸려있었던 '애플워치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몇 달간 애플워치를 쓴 후 나의 평은 '만족스럽다'는 것이었다. 사실 '시계 화면이 중요할 게 있을까? 시간만 보여주면 되지.' 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예쁜 디스플레이가 기분을 전환시켜주었다. 세계시간 기능이나 서머타임 감지도 편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운동 기록과 활동 앱 링이다. 애플워치가 예뻐서 샀지만 활동 앱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용자들도 꽤 많을 것 같은데, 활동 앱을 잘만 활용하면 정말로 더 건강한 습관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애플워치 활동 앱이란 무엇인가 - 빨간색 링: 움직이기 링. 하루에 활동/움직임/운동 등으로 소모한 칼.. 2023. 3. 6.
감상문: 김도은, '껍질의 길'을 읽고 전라매일 2022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작 '껍질의 길' - 김도은 전문링크: https://jaemisupil.com/contest/54046 ‘모성애’와 ‘내리사랑’이 주는 감동이라는 소재는 자칫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흔히 접해보지 못한 우렁이의 삶이 이야기의 줄기를 타고 내려오면서 글 속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짧은 글이지만 공감각적 표현을 사용하는 첫 문장이 좋다. 수족관에 대한 짧은 장면이 면회 후 돌아와 무생채를 준비하는 광경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수족관과 김장이라는 두 가지 매개체를 넘나들며 표현되는 어머니의 사랑과 뒤늦게 자신이 그것을 다 헤아리지 못했음을 깨닫고 눈물짓는 자식의 모습, 그러나 동시에 또 다른 자식의 어머니로써 존재하는 그 모습이 복합적인 감정이 되어.. 2023. 2. 28.
어 하우스 이즈 낫 어 홈 A House Is Not A Home 미국의 올드한 팝송 중 들을 때마다 나를 부드럽게 감싸안아주는 곡이 있다. “어 하우스 이즈 낫 어 홈” 이라는 제목으로, 건축물, 구조물로써의 집(하우스)과 그곳에 사는 구성원이 있어야만 완성되는 우리집(홈)은 동치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클라이막스에서 가사는, 그냥 집은 우리 집이 아니야, 이 공간이 우리집이 되도록 만들어줘, 하며 애타게 누군가를 부른다. 따뜻한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우리집’은 나에게 소중한 존재 또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존재를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다.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지만,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꾹꾹 눌러담겨있다가 터져나오는 듯한 그리움과 애수가 마음 속까지 그 울림을 전하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오래 되지는 않았다. One less .. 2023. 2. 21.
보스턴 티 파티 “저기, 대화 중에 방해해서 미안한데 혹시 우유 좀 나눠줄 수 있을까?” “그럼, 물론이지!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난 코비드 백신 접종 완료자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고마워. 아침에 던킨에서 산 커핀데 정말 못 견딜 정도로 맛이 없어.” “그렇구나, 그럼 우유를 많이 섞도록 해. 혹시 베이글도 먹을래?” 보스턴 시내 근처의 호스텔 주방에서 처음 더스틴에게 말을 걸 때, 나는 너무 긴장해서 땀이 난 손바닥이 살짝 떨리기까지 하는 걸 느꼈었다. 더스틴과 앵거스가 그 떨림을 눈치채지 못했기를 바라면서 최대한 친근한 모습으로 인사를 이어 나가려고 노력했다. 서로 만난 지 10분이 채 되지 않았지만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와 같이, 나는 물이 흘러넘치기 직전.. 2023.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