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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through/Daily records

애플워치와 습관의 과학

by Gwen_서진 2023. 3. 6.

애플워치를 샀다. 교통사고 피해 합의금으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매할 여건이 되는 바람에 1년 가까이 걸려있었던 '애플워치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몇 달간 애플워치를 쓴 후 나의 평은 '만족스럽다'는 것이었다. 사실 '시계 화면이 중요할 게 있을까? 시간만 보여주면 되지.' 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예쁜 디스플레이가 기분을 전환시켜주었다. 세계시간 기능이나 서머타임 감지도 편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운동 기록과 활동 앱 링이다. 애플워치가 예뻐서 샀지만 활동 앱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용자들도 꽤 많을 것 같은데, 활동 앱을 잘만 활용하면 정말로 더 건강한 습관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애플워치 활동 앱이란 무엇인가

- 빨간색 링: 움직이기 링. 하루에 활동/움직임/운동 등으로 소모한 칼로리를 보여준다. 칼로리의 양은 자기가 설정할 수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소모했던지 총 소모 칼로리가 늘어나면 빨간 링이 채워지면서 가시화가 된다. 자기가 항상 활동 목표량을 다 채운다 싶으면, 혹은 항상 못 채우고 끝나서 아쉽다면 새롭게 '움직이기'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링을 한 바퀴 다 채우고 나면 성취감도 느껴지고, 얼마 안 남은 링이 보이면 채워야겠다는 도전의식이 고취되기도 한다.

 

- 초록색 링: 운동하기 링. 운동한 시간을 분 단위로 카운트해서 채우는 링으로, 빠르게 걷기 수준 이상의 운동 혹은 운동하기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운동(달리기, 수영, 인터벌 트레이닝, 테니스, 로잉 등 다양하다) 을 하루에 30분 이상 수행하는지 확인하는 링이다. 의학적으로 '유의미한 건강 증진 효과'를 내기 위한 운동량은 하루 30분이라고 한다.

 

- 하늘색 링: 일어서기 링. 1시간에 1회 이상, 1분 이상 일어나면 카운트가 되고, 12시간동안 12회 이상 일어나면 한 바퀴가 모두 채워진다. 일어날 때가 되면 애플 워치에서 가벼운 진동과 함께 알림이 뜬다. 너무 오래 앉아있는 것은 몸에 좋지 않다는 것, 일정 시간마다 스트레칭을 해 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일하다 보면 깜빡하고 지나치기가 일쑤다. 애플워치 알림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스트레칭을 해줄 수 있으면 장기적으로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성적이지 않다"

 

이 활동 앱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행동심리학과 습관의 과학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학교 수업 중 Behavioral Changes, 행동 변화 이론에 대해서 많은 걸 배웠는데, 애플 워치 활동 앱은 이 이론들을 집약적으로 사용하는 예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머리로는 스트레칭의 중요성, 운동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실행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좋은 예로, 미국 bar 주인들 사이에서는 '1월이 가장 힘든 달이지만 그것만 넘기면 된다!' 라는 속설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새해 다짐으로 금주를 선언하지만 2월이 되면 모두가 돌아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꼭 금주가 아니어도 우리의 수많은 새해 다짐들은 며칠에서 몇 주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의 의지를 비난한다.

 

그런데 행동심리학의 특정 이론에서는 이런 실패를 '의지력의 부족'이라고 보는 것이 바로 실패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의지력의 부족, 사태의 심각성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 예를 들어 '성적이 나쁨'을 인식하는 것) 인지의 부족, 열정이나 의지의 부족이 문제가 아닌데 자꾸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의지만 다잡게 되고 결국은 또 다시 실패로 이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여러 정보를 통해 무엇이 이득이 될 지 판단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냥 습관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혹은 익숙해서 뭔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결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이건 사실 아주 사소한 행동들, 점심으로 과자를 먹는다거나, 일어나서 세수를 한다거나, 산책을 나간다거나, 하는 것들을 모두 아우르는 무의식적인 매 순간의 의사결정을 의미한다.

 

"습관을 형성하는 것은 의지가 아닌 환경이다"

 

그렇다면 그런 습관적이고 비이성적인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우리가 주변에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들, 그리고 환경 그 자체이다. Gerome Groopman은 The New Yorker에 기고한 글에서 fMRI(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는 정도를 관찰하는 영상 기술) 연구를 통해 도출된 뇌과학과 습관의 관련성에 대해서 얘기한다. 나쁜 습관을 없애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불편함(friction) 이며, 좋은 습관 혹은 루틴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그에 관한 힌트와 보상(cues and rewards)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습관을 만들거나 바꾸기 위해서는 현재 상태와 왜 우리가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선행해야 하지만, 이후 실제적으로 행동 양식을 변화시키는 데에 필요한 것은 인식과 의지 그 자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양식 변화를 위한 개입(intervention)을 고려할 때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인들이 있는데, 바로 자기 효능감(perceived behavioral control /self-efficacy), 장애물이라고 인식되는 것들(perceived barriers), 행동 변화로 인해 얻게 될 장점 혹은 행동 변화를 하지 못하게 될 경우 따라오는 단점(perceived benefits or threats), 행동 변화에 대한 태도(attitude), 그리고 사회적 인식(subjective norms)이다.

 

애플리케이션은 우리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Wendy Wood는 Washington Post에 기고한 Opinion 기사에서 습관에 대한 5가지 잘못된 믿은을 얘기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스마트폰 앱이 여러분의 습관을 바꿔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앱은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를 '모니터링'할 뿐, 실제적으로 행동의 변화를 이끌(lead) 수는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애플워치와 활동앱 링이 우리의 습관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활동앱 링의 심리학적 의의는 바로 자기 효능감의 고취라고 할 수 있다. 행동 변화 개입의 5가지 요소를 모두 향상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애플워치는 자기효능감에 집중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해낸다. 걸어다니거나 운동을 함으로써 실시간으로 활동앱의 '링'이 채워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링이 한 바퀴 둘러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내가 해냈다, 이만큼이나 했다'하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Wood의 말대로 스마트 기기와 앱들이 우리 습관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에 필요한 주요 축들 중 일부를 보조해줄 수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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