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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eojin's screen

클로저 Closer

by Gwen_서진 2023. 7. 21.

클로저, 2004
드라마/로맨스
감독: 마이크 니콜스
주연: 나탈리 포트만, 주드 로, 줄리아 로버츠, 클라이브 오웬
Closer, 2004
Drama/Romance
Drected by Mike Nichols
Starring: Natalie Portman, Jude Law, Julia Roberts, Clive Owen


 
나는 이 영화를 참 좋아한다. 대학생 때 처음 보고, 대학원 때 또 보고, 30대에 막 접어든 이번 관람까지 총 세 번 이 영화를 봤다. 서울에서 공연한 적이 있는 원작 연극도 쫓아가서 관람했었다. 클로저의 매력은, 다른 영화들도 물론 그렇지만, 유독 영화에 대한 감상이 인생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변곡점들을 지나왔는지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막 연애를 시작할 때인 20대 초반과, 20대 중후반, 그리고 30대 초반의 내게 클로저는 각각 다른 영화로 다가왔다.

안나의 사진전에 전시된 앨리스의 인물사진과 래리-앨리스의 만남

얼핏 보면 클로저의 주인공은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하는 앨리스 처럼 보이지만, 주요 등장인물 네 명이 동등하게 극을 이끌어간다. 영화를 보면서 이입하는 인물이 누구냐에 따라서 관객이 느끼는 감정도 달라진다. 연극을 원작으로 해서인지, 영화는 많은 서사를 생략한 채로 장면들을 내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졌을 어떤 사건들은 유추 가능하지만, 어떤 사건들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 각자의 해석과 추측의 영역에 남는다.


줄거리

앨리스(나탈리 포트만)와 부고 전문 기자 댄(주드 로)이 우연히 서로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이후 댄이 업무적으로 만난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를 만나 바람을 피운다. 댄의 장난질로 우연히 만난 안나와 피부과 의사 래리(클라이브 오웬)는 어찌저찌 커플이 된다. 안나의 사진전에서 앨리스와 래리도 마주친다. 앨리스는 바람피는 댄을 떠난다. 안나는 이제는 남편이 된 래리에게 댄과의 관계를 고백하며 이혼을 요구하고, 래리는 합의를 빌미로 잠자리를 요구한다. 하지만 댄은 래리와 잠자리를 한 안나를 용납하지 못하고, 안나와 재결합한 래리에게 찾아가 구걸하다시피 화를 낸다. 그 사이에 스트리퍼로 일하는 앨리스를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래리는 앨리스와 대화를 하려고 시도하고 실패했는데, 그 클럽의 정보를 댄에게 주며 앨리스를 찾아가라고 한다. 댄은 앨리스를 찾아내 다시 연인이 되지만 래리와 앨리스가 잠자리를 가졌다는 생각에 - 래리가 그렇게 말했을 뿐, 아무도 진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 괴로워하고, 앨리스는 그런 댄을 떠나 뉴욕으로 돌아간다. 홀로 런던의 추모 공원을 걷던 댄은 앨리스의 이름이 사실은 추모 공원의 한 비석에서 가져온 가명일 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Hello, Stranger만큼이나 유명한 영화 속 댄-앨리스의 이별 대사

처음 클로저를 볼 때는 이야기 전체에서 메스꺼움과 역겨움을 많이 느꼈다. 두 번째 클로저를 볼 때는 분노와 사랑에 대한 허탈함을 느꼈다. 세 번째 봤을 때는 슬픔과 사랑을 읽었다. 영화의 시작에서 댄과 앨리스는 Hello, stranger? (안녕, 낯선사람?) 라는 말과 함께 사랑에 빠진다. 이러한 우연은 운명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그 불타오르는 사랑이란 단지 서로를 '우연히' 만나기 전에 얼마나 각자가 절실하게 외로웠는지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다른 누군가를 만났더라도 똑같이 사랑에 빠졌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사랑은 이미 필연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그 우연의 사랑은 반복해서 나타나게 되며 그 결과로 댄은 안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댄에게 사랑이란 상태가 아닌 감정이자 본능에 가깝다.
그런 댄을 받아주며 불륜을 저지르는 안나는, 극적으로 수동적이고 결정권을 남에게 넘김으로써 자신의 심리적 부담을 덜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다가오는 사람을, 설사 그게 인터넷으로 여자를 만나러 수작질하다가 캣피싱을 당한 래리일지라도, 밀어내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받으면 그만이다. 자신을 갈구하는 댄을 밀어내지 않고, 종국에는 댄에게 떠밀려 래리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래리에게 떠밀려 댄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댄과의 관계를 파탄으로 이끌어나가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사건들 속에서 안나가 겪고 있는 심적 고통과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면서, 관객은 양가감정을 느끼게 된다.
래리는 차갑고, 이성적이고, 공격적이고, 전통적인 남성성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가져야 한다. 안나와 댄의 관계를 알게 된 후 그가 보이는 공격성과 스트립 클럽에서의 장면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드러내주고 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영리하게 사랑을 이용하고 승리를 쟁취한다. 내게는 네 인물 중 가장 이입이 힘든 캐릭터였다.
그런 래리에게 이용당하지 않는 앨리스는 댄에게는 과분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에는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그녀가 사랑했다던 댄으로부터 조차도 철저하게 숨겼다. 그녀와 그녀의 사랑은 순수해 보이고 그녀가 상처입고 눈물을 흘릴 때 우리도 아파한다. 상처입은 후에도 앨리스는 댄을 사랑하기로 결정하지만, 끝내 댄은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만다. 하지만 사랑의 바깥에서, 앨리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앨리스라는 사람은 누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