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웨일, 2022
드라마/픽션
감독: 대런 애로노프스키
주연: 브랜던 프레이저, 세이디 싱크, 홍 차우, 외
The Whale, 2022
Drama/Fiction
Drected by Darren Aronofsky
Starring: Brendan Fraser, Sadie Sink, Hong Chau, et al.
더 웨일, 단어 자체는 고래라는 뜻이지만 고도비만인 사람들을 일컫는 속어라고도 한다. 슬랭에 익숙치 않아서 처음에 제목만 들었을 때는 모비딕 같이 고래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했었다. 모비딕이 소재로 등장하는 것만 맞았다. 어느 날 T는 영화를 보고 왔다고 했고, 무슨 영화? 어땠어, 추천해? 라는 질문에 The Whale, 아니, slightly depressing 이라고 했다. 그래서 더 이상 찾아보지 않고 나는 '더 웨일'을 마음 속에서 놓아버렸었다. 어느 날 주연 배우인 브랜든 프레이저가 오스카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것을 볼 때 까지.
그날 밤이 오스카 시상식이라는 것을, 바텐더 M이 내게 오스카를 보러 온 거냐고 물었을 때, 그제서야 깨달았다. 작년에도 오스카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속보로 뜨는 수상자들의 이름과 수상작을 슬쩍 훑어보는 정도가 전부였다. 어쩐지 일요일 밤 치고는 바에 사람이 꽤 많았다. 가만히 술을 홀짝거리는 것 보다는 뭐라도 볼 거리가 있으니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수상 작품 후보 목록에는, 당연하게도,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본 작품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2022년에는 영화를 꽤 봤다고 생각했는데 후보 중에서는 제목만 들어보고 미처 감상하진 못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더 웨일'이 눈길을 끌었다. 그들의 수상소감은 뭔가 뭉쳐있는 에너지가 담겨있는 것 처럼 들렸다.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하기 전 '더 웨일'에 대해 검색해봤다. IMDb는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해 "A reclusive, morbidly obese English teacher attempts to reconnect with his estranged teenage daughter."라고 한다. 대체 무슨 얘기인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한 번 직접 보기로 하고, 그렇게 마음을 먹고, 시간이 흘러갔다.
정확히 2주 후에, 나는 캘리포니아에 있었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즉흥적으로 떠나온 여행이었다. B의 집에서 머무르면서 해변을 걷고 꽃을 보고 커피를 옆에 두고 일을 했다. 로컬 바에 가서 애드거 앨런 포의 얘기를 하는 화가와 얘기를 하고 탐 콜린스와 위스키 사워를 들고 잔을 부딪히며 B의 사생활에 귀를 기울이다가 함께 들어오는 길에, 우리는 영화를 한 편 보자고 했다. 후보로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 몇 개를 꺼내들었고 B의 선택은 '더 웨일' 이었다. 브랜든 프레이저의 눈물이 그녀를 사로잡은 것 같았다.
밤인데다가 암막 커튼을 내려서 칠흑같이 어두운 거실에서 소파에 기대어 앉은 우리는, 벽에 기대어 바닥에 앉아있는 커다란 티비에 영화를 올려놓았다. 밝아지는 스크린과 함께 밤의 2막이 시작되었고 2시간동안 우리는 조용히 앉아 스크린을 응시했다. 영화는 조용했다. 고도비만 환자를 나타내기 위한 분장이 엄청나긴 했지만 그 외에 눈길을 끌 만한 특수효과같은 것이 있는 건 아니었다. 장면들은 적막하고 갇혀있었다. 거대한 찰리(주인공, 브랜든 프레이저 분)를 담아내기에 벅차 보이는 그의 집안 곳곳, 거실의 소파와 부엌 한 켠 그리고 텅 빈 방과 침대가 숨이 막혔다. 찰리 집의 창문을 통해서만 느껴지는 날씨조차 끈적거리며 영화를 침잠시켰다.
사랑과 구원, 이라는 다섯 글자를 썼다가 지웠다. 다시 고른 두 글자는 구원. 누군가는 찰리를 돌보는 친구에게서, 딸을 돌보는 찰리에게서, 사랑을 느낄 수도 있을 테지만 나는 그 속의 모든 관계를 통해 구원받고자 하는 욕망을 본다. 구원하고자 하는 욕망이 아니라, 구원받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 신에 대한 믿음과 그를 통한 구원을 전파하는 토마스에게도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속죄와 구원이었다. 모두의 삶은 속죄 의식의 끝없는 연장이며 그 끝은 구원을 향해 달려간다. 그런 인물들의 면면은 공감을 자아내기보다는 사뭇 피하고 싶은 역겨움을 느끼게 만드는데, 그것은 그들이 보여주는 것이,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간의 욕망과 모순과 더러움은, 모두가 역겨워하는 찰리의 모습, 그 몸뚱아리를 통해서 나타난다. 감독은 그저 이런 것들을 보여준다. 혹자는 감정적 고통과 연민에 호소하는 가족 서사이며, 주연 배우의 연기가 없었다면 성사되지 못했을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브랜든 프레이저의 연기가 없었다면 영화는 설득력을 크게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가족 서사도, 사랑의 서사도 아닌 구원의 서사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우리 각자가 판단하게 만든다. 그들은 구원받았는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구원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 판단될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해 돌이켜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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